예술사

에드와르 마네의 생애와 작품세계

versaille 2025. 1. 8. 21:20

Edouard Manet / 에드와드 마네

 

스페인적인 미술의 영향을 받은 마네의 기법은 인상파 화가들과 차이점을 두는데

커다란 납작붓으로 연속되는 힘찬 붓터치와 어두운 색깔의 사용이다.작품을 빠른 시간안에 단번에 그리는 것도 그의 특징으로 ‘피리부는 소년’는 한번에 끝내고 석유로 다시 지우기를 12번이나 해서 얻은 작품이다.눈에 보이는 현실을 그리면서 평면적인 화면구성,생략적인 묘사법을 살려 신선한 색채로 화면을 통일하는 것이 그의 기법이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올랭피아(Olympia)인데 가장 큰 스켄달을 불러 일으키 작품이다.

여자의 나체화는 하렘의 여자를 연상 시키며 검은 고양이는 당시 매춘부를 의미한다.

당시 나체화가 문제화 된것이 아니라 이 나체화의 기법에서 크게 문제가 되었는데 그 이전 시대 나체화와는 달리 살아 있는 듯한 생생한 피부 표현과 어두운 뒷배경과의 강렬한 대비이다.그러나 그 당시 가장 공식적으로 큰 충격은 이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듯한 모습에 관람자가 마치 손님이 된 듯한 느낌으로 부도덕적인 자극을 선동한다고 보았다.그러나 그림을 다시 자세히 보면 여인이 관람자를 왠지 거절하는 듯 왼손으로 sex를 가리고있다.이그림에서 나타내고자 한것은 지금 그림을 보고 있는

관람자 야말로 부도덕적이며 ,외설스럽고,남의 것을 훔쳐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인 것이다.

이 그림은 기법상으로도 당시 많은 비난을 받았는데 너무나 강렬한 대비의 어색함과 원근법으로 봤을때 왼쪽 팔의 구도와 비례가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또 미술 평론가들 중에서는 이그림을 야유해 ‘하렘 여자의 노란 배’라고도 불렸다.모네의 끊임없는 노력 끝에 1890년 프랑스 정부로 부터 구입하게 된다.

인상주의의 선구자로 여겨왔으나 그는 위대한 고전 미술과 현대성 사이에서 천재적인 중개 역할을 맡고 있은 화가 였고,발표하는 많은 작품마다 비난과 야유를 받았지만 드가,모네,들라쿠르와등 거장화가들로 부터 지지를 받는 화가였다.

 

현대미술의 출발점으로 인식되는 1863년의 낙선전에서 [풀밭위의식사]를 출품하여 큰 반향을 일으킨 인상파를 대표하는 화가중에 한사람으로 파리에서 태어나 한때는 선원의 견습생이되었으나 화가를 지망하고 ‘쿠튀르’의문하생이 되어 그림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스승에게 배우기 보다는 루브르 미술관에서 고전작품을 끊임없이 묘사하면서, 실질적으로는 ‘고야’ 특히 ‘ 벨라스케스’에게서 강향 영향을 받았다 처음으로 살롱에 작품을 출품한 해인 1859년에 이미 낙선을 경험했고, 1863년 나폴레옹 3세의 승인을 받아 열린 「낙선자 전시회」에서 영웅이 되기도 했던 그는, 살롱에서 그의 작품이 받아들여지며 ‘현대’ 예술이 그 모습을 그 모습을 드러낼때까지 쉬지않고 열심히 도전하고 또 도전했다.또 대중과 비평가들에게는 비난을 받았지만, 그시대의 위대한 지성가인 졸라, 보들레드, 말라르메 같은 그의옹호자들과 정신적인 세계를 나누며 그의꿈을 접지 않았다. 그는 19세기 중반에 있어 처음으로 야외에서 반사광을 표현하는 새로운 회화를 만들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었고 . 후에 마티스는 “그는 빛의 반사를 따라 그림을 그린 최초의 인물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화가의 작업을 쉽게 만든 최초의 인물이었다.”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특히 낙선전에 출품했던 이 [풀밭위의 식사]는 파리스의 심판 구도 를 이용하여 그린것으로 시선을 똑바로 두고 앞을보는 당돌한 나체여인[빅토린 이란 여인으로 추정] 이 모습이 담긴 이 그림은 당시 살롱전에서는 많은 비난을 받았지만, 오히려 세간의 주목을 끌게 되는 계기 가되었다. 살롱전에 여러번 출품하여 낙선의 고배를 마셨던 마네는 실질적으로는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가진 화가로 후에 알려지게 되었으며, 파사로 모네 시슬레 등과함께 청년작가들과함께 후에 인상주의 의길을 여는데 정신적 지주가되기도 했었으나 그는 아카데미즘의공인을 꿈꾸며 적극 참여하지는 않는다 또 그들과 똑같이 분류되는 것을 꺼린나머지 인상파그룹의 전시회에는 참가를 거부했으나 실제로는 인상파들만의 독특한 기법을 사용하여 그림을 그렸다.. 또 1865년의 살롱 입선작《올랭피아 lympia》로 일약 세상의 주목을 끌었다. 출품 당시 엄청난 센세이션으로 그 당시 사람들의 열렬한 반응 속에 휘말렸던 이그림으로 많은 구설수에 오르게 되기도 한다. 다소 짧은 다리와, 둥글게 솟은 배, 배꼽과 가슴사이로 이어지는 회색의 라인,각진 여인의턱, 극부를 가리고 있는 도전적이면서 선정적인 여인의손, 노르스름한 실제여인의 피부색을 표현한 너무나 현실적인 여인의 나신을 그림속에 표현한 마네에게 늘 그림속의 완벽한 여인상에 익숙해져 있던 많은 대중들과 비평가들은 충격에 휩싸여 혹평하며 조소했고, 그 그림 올랭피아가 미술관에 걸려 있을 때 사람들은 그 그림을 찢고 돌을 던지기 위해 구름같이 몰려들어 결국 경찰이 나서서 그런 사람들의 행동을 저지하기까지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그러나, 아름다움의가치의 기준을 확연히 바꾸어놓은 마네는 후에 인상주의 에서 가장중요한 주관적인 관점으로 대중의눈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감한 작가로 재 인식되며 이 두 작품에 대한 비난은 당시대에는 혹독했으나 도리어 그의 표현기법의 참신성과 색채의 독창성을 안정받아 인상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그림들로 후에 근대미술에 중요한 한 휙을 긋는 계기가 되었다고 재평가되었다.

또 후에는 류마티즘 으로 고생하여 비교적 쉽게 그릴수 있는 파스텔화에 전념하기도 했다.

수많은 고난을 견디어야 했던 마네, 살롱에서 낙선을 경험한 1859년으로부터 사십 년 후, 그리고 그가 사망한 지 칠 년 후에도 마네는 <올랭피아>가 미국으로 가는 것을 막고 또 그것을 프랑스 정부에 기증하기 위해 기부금을 내야만 했던 웃지못할 일화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마네는 무엇보다 전통과 혁신의 중개자 역활을 한 중요인물로 평가되며 그 이름을 미술역사의 사조속에 남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