Émergence : L’impressionnisme et son époque/ 인상주의의 출현 및 시대적 배경
인상주의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미술 유파의 하나로써 1874년에서 1886년에 걸쳐 개최된 8번의 전시회를 통해 19세기 이전의 미술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미술이 등장하게 된다.이 인상주의는 아카데미즘에 획을 긋고, 현대 미술의 근본이 되면서 미술사에서도 중요한 대표적인 거장의 화가들을 탄생시킨다.
인상주의는 크게 두 가지의 의미로 구분되는데. 첫 의미는 인상파 화가들의 주된 공통점이 기존의 아카데미적인 미술 경향에서의 탈피와 형식적인 전시회에 대해 반대하고, 어떤 관계에도 메이지 않는 자유로운 관찰과 기법으로 밝고 미묘한 대기의 인상을 묘사하는데 전념 했다는 점이다.그 당시 공식적으로 정부와 사회를 통해 인정된 미술은 오직 아카데미즘 뿐 이였다.이 아카데미즘란 고전적 규범에 충실한 고전주의적 경향을 의미한다. 나폴레옹 3세는 예술은 나라와 왕을 위해 만들어 지기를 원했으며,나라와 관련 된 주제나 고대 문명에 관련된 주제여야 했다.이렇듯 아카데미즘이 아니면 화가로써 인정 받기 어려웠으며,그 당시 ‘파리 전시회’는 화가로써 유일하게 인정 받을 수 있는 중요한 전시회로 화가의 미래의 작품 활동을 결정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물론 이 아카데미즘을 반대하기 시작한 운동은 당시 낭만주의(들라쿠와,제리코),사실주의(코르베,밀레),바르비죵파(룻소,토로)에서도 서서히 풍경화를 중시 하기 시작했으며 앞으로 젊은 인상파 화가들에게 좋은 예가 된다.두번째 의미로는 드가를 제외 하고는 야외의 햇빛 아래서 직접 제작을 했다는점이다.자연을 앞에 두고 선입관 없이 그들의 눈에 비치는 것을 그대로 어떻게 표현할 것 인지 고민하고, 표현하기 시작해서 시작되며,시간에 따라 색이 변하는 것은 주로 자연이기 때문에 주제도 주로 자연을 담은 풍경화를 많이 그렸다 하여 사실주의에 동조 된 외광파 라고 부르기도 한다. “내눈에 보이는 것만을 그리겠다”는 사실주의 코르베의 사고는 혁명적이나 마네는 새로운 그림은 사고뿐 아니라 그리는 방식도 틀려야 한다고 생각 했다.인상주의의 시초를 제시한 마네는 야외의 햇빛 아래 물체의 색채가 더욱 다채롭다는 점에서 고전적 명암법을 버리는데 이점은 인상파와 추구하는 바가 동일했으나, 전혀 풍경화에는 관심이 없었고,시각 혼합의 기법도 쓰지 않았으며,어두운 톤과 검정색을 쓰므로 인상파 화가들과 차이점을 두었다.그러나 젊은 화가들은 그 당시 스켄달 작품으로 비난의 대상이었던 마네를 중심으로 카페 게르부와에 모여 새로운 회화에 대한 토론과 연구를 하게 되면서 품은 인상주의의 출현을 예고 하는 것 이었다.드가 역시도 인상파이지만 그의 그림도 조금은 다른 성향이 있었으며 ,그후 고흐.고갱.폴 세잔느.뚤루즈 로트렉 또한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아 인상파로 출발하지만 보다 풍부한 표현을 위해 제한 된 목표(예..7가지의 색깔 한정등)를 거부하여 후기 인상파를 등장시킨다.
인상파 화가들의 친구이자 사진 작가인 나다(Nadar)의 집에서 첫 전시회가 열리고 이때 출품한 모네의 작품 ‘인상– 해돋이’는 미술 평론가 르루와(Reroy)에 의해 미완성 작이라는 비난과 함께 ‘인상파 전시회’라는 조롱썩인 기사를 실었는데 여기서 인상파라는 이름의 기원이 나오게 되었다. 그러나 그 어떠한 비판과 야유에도 인상파 화가들은 자기들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1897년 귀스따브 까이보트는 화가이자 엄청난 재산가로 사망 당시 그가 수집 했던 67여점의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들을 기증하려 했고 르느와르의 노력으로 2년 뒤 한 30여점의 작품들이 룩셈부르그 박물관에 소장되는 과정에서 아카데미 화가들의 커다란 반발과 비판을 받기도 한다.이는 19세기 말 까지도 인상주의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점을 엿 볼수 있다.
Origine et Méthode/ 시초 와 기법
1.사진의 발명
화가들의 가장 큰 목적은 현실적으로 실감나는 표현이였는데 사진의 대량 생산으로 일반인들에겐 그림보다 사진이 더 사실적으로 인식 되었고 기존의 사실적인 회화는 설 자리를 잃게 된다.이제 화가들은 더욱 창조력을 발휘하여 사진 영역 너머에 있는 진리를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이것은 화가들을 점 점 더 시각적 사실로 부터 멀어지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또 구도법에 있어서 화가들은 사진의 영향을 크게 받게 되는데 사진처럼 틀로 시야의 영역을 잘라내는 식의 대담한 구도가 가능하게 되었다는 점과 주제를 순간적으로 포착 하는 점 등 일순간적인 장면을 묘사하게 되었다.
2.M.E 슈브럴(Chevereul) 의 색체와 빛의 원리에 대한 연구 이론
이론에 의하면 노란색 옆에 파란색을 놓고 멀리서 보면 시각상 또 다른색상(초록색)
보이는 현상을 말한다.또 노랑색을 오래 보고 있으면 우리는 거기서 보색인 보라색을 보게 된다는 이론이다.인상파 화가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친 시각 혁신은 당연히 회화 기법상의 혁신을 수반하게 되며,기법적 원리를 개발하게 되는데 기법을 정리하면, 색이란 3원색 중의 2가지를 섞으면 새로운 색이 되는데,색은 섞으면 섞을수록 명도를 잃게 되므로 이 새로운 색보다 밝은 색을 만들려면 캔버스위에 잔 필촉으로 2색을 나란히 찍고 조금 떨어져서 보면 이것이 혼합되어 보이는 기법이로 ‘시각 혼합 또는 색조 분할’이라도도 한다.그러므로 필요한 색보다 밝은 색을 얻게 된다.이처럼 밝은 바탕을 얻기위해 집요한 노력은 그들의 야외제작의 한 결과로써.즉 빛 속에는 검정은 포함되어 있지 않으며 야외에서는 모두가 더 밝게 보이고 빛이 물질에 반사되어 그것이 눈에 들어올때 색이 보인다는것을 체험적으로 이해 하게 되었다.오늘날 거리나 역 안의 큰 광고 포스터도 이 이론을 적용하여 제작된다.
3.휴대의 튜브 물감 발명
인상파 화가들의 주된 주제는 야외에서 그린 풍경화다.휴대하기 좋은 물감의 등장으로 그 전에는 아뜰리에 안에서 보조자들에 의해 물감을 준비 하나 오래 보관 할수 없었고,19세기 초에는 돼지의 방광을 이용해 만든 통에 보관 했으나 실용적이지 못해 많은 불편함을 주었다.이제 이 튜브 물감의 등장으로 아뜰리에를 벗어나서 야외에서 직접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Sa place dans L’histoire d’art /인상주의의 미술사에서의 위치
인상주의가 미술사에 있어서 근대적인 감각의 해방시기 이며 서유럽 사실주의 미술의 최종 단계이자 극치인 동시에 20세기 현대미술을 향한 출발점이다.
인상파는 야수파로 퍼지게 되며 고흐는 표현주의로 고갱은 나비주의로 세잔느는 입체파를 낳게 되며 그외에도 많은 현대 미술 유파에 간접적 직접적 영향을 미친게 된다.
산업화되고 도시화되던 사회속에서 태어난 인상파 화가들로 인해 미술 시장 역시 개방되기 시작 하여 주문식 작품을 구입하던 고정적 수요층인 정부와 교회,혹은 귀족들로 부터 갤러리와 개인 소장가라는 근대적 개념인 미술 제도권이 형성 되므로 화가들이 직접 작품을 거래 할 수 있게 된다.이렇듯 인상파 화가들은 화가의 사회적 역할을 완전히 바뀌어 놓았고 앞으로 미래 화가들에게도 작품 세계의 완전한 자유를 가져다 주었다. 또 최근 스페인에서 시작되어 영어권 사회로 급속히 확산되는 화제거리가 인상파와 후기 인상파 화가들이 사진을 그래도 묘사 했다는 사진들이 해외 인터넷에서 큰 화제로 떠오르고 있다.카메라 만큼 인상주의에 큰 영향을 준 발명품이 없다는 것은 미술사가들의 공통된 설명이지만 ,설사 그런다 한들 세계속의 명화는 영원한 명화가 아닐까…!이렇듯 인상주의는 오늘날까지도 지대한 연구 관심대상이다.
‘인상 주의’ 는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미술사조 임과 동시에 서양미술 흐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평가 받고 있다. 그러나 인상주의의 그 시작은 지금의 명성처럼 화려한 것인 아닌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시작되었다는 것이 흥미롭다. . 즉. 19세기 후반 프랑스의 화가들의 등용문이었던 [살롱전]에서 낙선한 몇몇화가들이 낙선에 분개하여 당시 낙선된 그림들을 중심으로 ‘낙선전’ 을 열게 되었는데, 이 전시회에서 ‘끌로드 모네’ 의 [인상, 해돋이] 라는 제목의 작품에대해 비평가 ‘루이 드로이가 《Le Charivari》지에 기고한 비판에서 처음엔 조롱의 뜻으로 비꼬아진 것으로 그‘ 인상주의’라는 이름이 바로 여기서 유래되었다. 즉, 자연의 본질을 그리지 못하고 오로지 본질의 ‘인상’ 만을 그린다는 비판의 뜻을 담고 ‘모네’ 작품의 제목에 빗대어 거론하였으나, 이후 이때 몇몇 화가들이 이를 다른 뜻으로 재 해석하여 스스로를 ‘인상파’ 라 부르게 되면서 유래되었다. 즉, 이 조소의 의미인 ‘인상주의’ 란 말을 스스로 받아들인 이유는 과거의 화가들이 대상을 사실적으로만 묘사하려는 노력에 반대하여 ‘스스로 순수하게 눈에 보이는것’ 만을 그리고자했던 즉, 그리려는 대상이 더이상 ‘대상 자체의 본질’ 이 아닌 그대상이 빛과 반응하여 만들어내는 ‘인상’이었다는것을 그들 스스로가 인정했기 때문이었다.
바로, 인상파가 빛을 그리고자 했던 이유는 세상 만물은 빛에 의해 그 형태가 드러나고 빛의 강약에 따라 형태와 느낌이 달라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서양 미술사의 ‘혁명’ 으로도 간주되는 이 ‘인상주의’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바로 이 ‘빛’ 에 주목하는 것이다. 과거의 화가들이 눈앞의 대상을 똑같이 재현하기 위해 이 ‘빛’을 부수 적인 존재로 생각했다면, ‘인상파’ 화가들은 이 ‘빛’을 주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그저 물체를 그리기 위해 빛을 이해하는 차원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이 ‘빛’이 대상과 부딪칠때 생기는 ‘반응’ 을 주관적인 눈으로 보고 그리기 시작했다는 점이 가장 큰 변화이며 , 이는 바로 ‘근대미술’ 로 이어지는 중요한 버팀목 역활을 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그 이유는 그 시시각각 변하는 ‘빛’ 을 이해하기 위해서 ,자연의 다양한 색채를 발견하게 되었고, 그 그리려는 대상은 다양해 졌으며, 그로 인해 그림은 더 이상 특정계급을 위한 것이 아닌 ‘일반적’인 것이 되어 대중화되었고, 그러면서 주관적인 관점에서 보는 아름다움의 기준이 바뀌게 되었으며, 그를 표현하는 방식에도 수많은 실험을 통한 시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 그로 인해 미술은 상상속의 모방의 미술에서 벗어나 더욱 자유롭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새로운 미술혁명의 하나인 ‘인상주의’의 시작은 단순한 우연만은 아닌 시대적인 배경에도 그 이유가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겠다.
즉, 18세기말과 19세기초는 인류역사상 유래가 없는 혁명의 시기였다. 이러한 혁명을 거치면서 기존의 사회구조는 무너지고, 새로운 사회구조가 형성되기 시작했는데, 즉 농노, 지주, 수공업자로 대변되던 장원제도의 붕괴로 전통적인 귀족이라는 계급이 해체되었으며, 급격한 산업혁명으로 인하여 도시가 탄생되면서, 시민계급이라는 새로운 중산층 계급을 형성하게되었고,이는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에 충분했다. 바로, 그들이 보는 세상은 이제 그전시대에 비하여 상상할수 없을 만큼 밝은 것!이었다. 기차나 기선이 빠르게 이동하고, 도시와 사람들은 활기에 넘쳤다. 그런이유로, 어두침침한 당시의 아카데믹한 그림들은, 그들의 눈에 보이는 당시의 밝은 세상과 비교해 볼 때 더이상 진실이 아닌것처럼 보이기 시작했고,.사실상, 많은 시민계급들은 무의식을 통해 미술이 밝아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은 눈앞에 보이는 바로 지금의 현실에만 관심이 있었다. 미래의 세계나 죽음 뒤에 오는 영적인 세계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시간은 오로지 현재에만 의미를 부여했고, 과거와 현재 와 미래에 동일하게 지속적인 느낌을 갖는 고유색이란 더 이상 진실이 아닌것을이해하게 되었다. 그렇게 눈앞에 지금보이는 순간과 그 변화만이 진실로 느껴지면서 그렇게 인상주의 많은 이들을통해 이해되기 시작했다. 과거의 회화들, 평범한 회화들은 사물의 외관을 모방했고,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로 하는 다른 회화들은 사물의 본질/실재를 모방하려 했다. 그러나 인상파는 현상의 생성 자체를 모방하려 했다 드라크로와를 비롯한 낭만주의자나, 쿠르베 등 사실주의자를 통해서도 조금씩 비약적으로 밝아 졌지만 , 예술이 시대의 거울이듯, 사회가 밝아지면서 예술또한 새로운 ‘밝음’을 기대하게 된것으로. 이 밝음의 혁명을 가능케 한 것은 바로, 화가가 이젤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는 사실이며 이는 바로 혁명이었다. 그 이전에는 그 누구도 이젤을 들고 밖에 나가서 실물을 그리지않았었고,간단한 스케치를 제외하고는 밖에서 사물을 직접보며 그리는 일은 행해지지 않았던것도 사실이다.그렇게 직접 자연을 보자 자연은 생각보다 더 밝았고. 햇빛에 빛나는 자연은 너무나 많은 빛을 가지고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던것이다. . 또 이젤을 들고 밖으로 나가그림을 그리게 된것은 , 화가라는 지위가 새롭게 설정되는 시기라는 것을 암시하는데,이는 많은 사람들이 예술이 더이상 , 특정계급을 위한것이 아닌, 누구든 누리며 즐길수 있다는 것을 이해한 중요한 시기가 된다. 산업혁명을 통한 옷감의 발달은 필연적으로 염료와 안료의 발달을 가져왔으며. 인상파당시에는 광물질에서 색소를 뽑아내는 새로운 안료들 뿐 아니라, 화학의 발달로 인하여 화학적인 안료들이 쏟아져 나온이유로,따라서 많은 사람들은 모두 시각적으로 풍성한 현란한 색체들에 관심이 쏠렸다. 색은 섞을 수록 채도가 떨어지지만, 많은 안료가 없던 시대에는 필요한 색을 만들기 위해서는 섞을 수 밖에 없었으나, 그렇게 새로운 값싼 안료의출현과 이를 운반하기위한 방법중인하나인 튜브 물감의 발생은 당시 화가들에게 다른 세계를 열어준것이다.
그렇게 인상파의 그림은 빛이 온화면을 지배한다. 시시각각 변하는 그 ‘빛’은 빠른 필치와 붓놀림을 요구하고 팔레트에서 색을 섞기 보다는 직접 화폭에서 붓의터치를 이용해 화면을 구성하여 시각적인 착시효과를 노리며 그로인해 붓터치는 대범해지고 색은검은 색과 흰색의사용을 억제하며 밝은 원색을 이용하여 그림속의빛을 잡아내려했는데 ,그로인하여 풍부한 색으로 빛을 잡아냈으며, 그 대상은 어느것이라도 좋았다. 그것은 후에 ‘카메라’의 발달에도 영향을 미치게된다. 인상파들에게서 사물은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빛에 의해 망막에 자극되는 하나의 색이며 광선이었다. 때문에 그 빛의 유희는 사물의 윤곽선을 지워 버렸고, 그로 인해 입체성이 상실되었다. 이러한 형태의 문제를 세잔에게 기하학적 자연관을 가져오게 하였고 나아가 입체파에 영향을 주었다.또 구도면에서는 대상을 영원불변의 것이 아닌 순간적, 인상의 느낌으로 파악하고 마치 의도된 구성속에서 카메라에 우연히 잡힌 한 컷의 사진처럼 순간적 영상효과를 전달하려 하였다. 그리하여 극단적인 부감(위에서 내려다봄)이나 사진의 틀처럼 한 부분을 잘라낸 듯한 과감한 구성 등의 참신한 구도가 도입되었다.
이 ‘인상주의’ 화가들이 보려했던 ‘빛’ 이라는 것이 어떤것이었는지, 이해하기위해선 아주 간단히 말해 ‘카메라 셔더를 누르는 순간’ 을 생각하면 된다. 즉, 자신의 눈으로 포착한 대상의 어느 순간을 재빨리 화폭에 담는것이다. 그 빛은 시시각각 변하며, 보는 이에따라 달라질수 있으므로 다양한 대상을 찾아연구하게 되고 이로인해,‘인상주의’ 를 또 다른해석으로 볼때 ‘광학’ 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15세기 르네상스 미술도, 17세기 바로크 미술도 빛에 주목하였으나 19세기의 인상주의 미술은 빛을 과학적으로 연구한것이 다르며, 과학적인 빛의 연구는 미술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고 인상파(Impressionism)라는 근대미술(Modern Art)을 탄생시키게 된것에 다시한번 주목한다.즉, 지금까지의 미술은 물체 = 독립변수, 빛 = 종속변수라고 생각했었는데, 인상파는 이러한 생각을 180도로 뒤집어버린 것이며. 그래서 인상파에게 중요한 것은 형태가 아니라 빛이 된 것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을 단숨에 포착하여 그리기위해 후에 일부 인상주의 화가들은 직접보고그림과 동시에 사진을 찍어 사진이 포착한 순간을 보고 그리는 방법릏 취하기도 하였고, 즉 과학적인 빛의분석에 의해 그림을 그리려는 시도가 상상에 의한 역사적 사실이나, 있는 대상 그대로 똑같이 모방하는 것이 최고의 아름이 다움이 되었던 인상파 전 시대의 예술의 미적기준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또 이것은 후에 이 빛의연구가 좀더 과학적이며 체계적으로 연구되어 ‘점묘법’을이용했던 신인상주의로 이어지고 여기에단지 시각효과만을 누린것이아닌 작가의 주관적 색채가 더욱짙게된 후기인상파로 이어지는 계기가된다.
이로인해 자신이 바라보는 주관적인 빛에 대해 당시 예술가 들은 서로 토론하기위해 많은 만남을 가지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당시 인상주의 화가들과 파리의 ‘몽마르뜨언덕’과는 인연의 시작이되기 했다. 당시 1889년 세계 만국 박람회가 열리고 에펠탑이 세워진 파리는 미술 분아니라 경제적인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었고. 카페와 카바레 같은 유흥 사업은 급격한 산업화의 그림자처럼 따라붙고 몽마르뜨에도 이런 카페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는데 ,귀족과 부르조아들이 섞여지며 천한 계급의 가수와 무희 어릿광대가 펼치는 쇼가 펼펴지기도 했던 자유로운 분위기에 이끌린 많은 예술가들이 모여들면서, 빈번히 그곳의 풍경이 예술의소재가 되기도 하며 또 당시 예술가들의 모임장소로도 쓰이면서 어느덧 예술의 중심지로 인식되기시작했던 것이다. 당시 어떤 평론가들은 " 도대체 인상파 그림들은 꼭 가스등 같다., 우리가 보고싶지 않은 부분까지 밝혀주고 있으니 .. 라고 투덜거리기도 했지만, 진실앞에서 두려워하던 그 이전 시대의 예술의 관념에서 벗어나, "나는 사물을 그대로 그리지 않는다. 내가 그리는 것은 내가 그 사물에서 느낀 것, 즉 인상을 그린다". 라고 말한 르느와르나 , 다른 빛을 그려내기위해 똑같은 성당을 40번이나 그렸던 모네,도시를 떠나 원시림에서 고귀한 야만인이 되어다른 세상을 그리고자 했던 고갱,자신의 귀를 자르면서까지 예술의자존심을 지키려했던고호, 화면 구성의 내적 논리를 위해 외적 현상의 논리를 대담하게 무시하고 20세기 많은 화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던 르느와르, 인상주의를 미술관의 미술처럼 견고하고 영속적인 것으로 만들 것'을 결심했던 세잔느, 마치 기억속의 아련한 사진처럼 다양한주제들의 한순간을솔직하고 대담한 표현으로 화첩에 담았던 드가, 카바레에서 흔들리는 무희들의 움직임을 그려내며 자신의 신체적결함을 그림으로 극복하며 훗날 포스터작가로 거듭난, 영혼이 자유로왔던 로트렉 , 기존의 통념을 깨고 혁신적인 주제와표현기법으로 온 미술계를 뒤흔들었던 마네까지 이모든 이들이 추구했던 진정한 세계는 바로 이 ‘인상주의’를 통해 거듭났고, 그들이 끝없이 연구했던 ‘빛’은 오늘날 우리 미술사조에 그 이전과는 전혀다른 밝은 미래의 세상으로 향할수있는 또 하나의 미술역사의 새로운 길을 제시해 주었다.
Tip………………………………………………………………………
1] 사진이 인상파를 불렀다.
인상파의 탄생은 표현양식이나 내용에 있어서는 일본 우키요에의 영향이 컸지만 산업적으로 볼 때는 인상파보다 앞서 등장한 ‘사진’의 영향이 또다른 요인이었다. 사진이 등장하기 이전까지 회화는 유일한 기록 수단이었다. 그러나 사물을 모습 그대로 포착해내는 사진이 등장하면서 회화는 사물을 정확하게 묘사하는 기록성에서 그 자리를 물려줘야 했다. 대신 새로운 표현방식과 시도를 통해 회화는 다른 의미를 찾기 시작했다. 그 움직임이 바로 인상파다.
재미있는 점은 사진이 지금은 가장 대표적인 빠른 속도의 예술로 인식되고 있지만, 당시 인상파가 사진에 맞설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속도에서 앞섰기 때문이었다는 점이다. 당시 사진은 빛에 가장 민감한 물질인 은을 이용한 ‘은화 사진’이었다. 얇은 종이에 은박을 입혀 인화했기 때문에 지금의 필름과는 달리 사진 한장 찍는 데 보통 한두 시간 이상 걸릴 만큼 느렸다. 그러나 이에 비해 인상파는 노출된 빛 속의 사물을 빨리 그리는 속사에 능했기 때문에 사진보다도 빨랐다. 인상파는 초상화처럼 사물을 그대로 묘사하는 기능은 사진에 넘겨주는 대신 새로운 표현을 적극적으로 도입해 기존 고전회화와는 다른 근대 미술의 첫 번째 흐름으로 등장했다.
즉 들 앞에 펼쳐진 빛과 그 빛에 의해 느껴지는 아름다움(美)을 쫓아갔던 것이다. 이러한 빛과 색에 대한 관심은 신 인상파, 후기 인상파로 이어지고, 야수파 등의 현대 회화의 출발에 원동력이 된다.
2] 우리나라와 인상주의의관계
1930년대 동양화단은 전통적 관념산수가 최조하고 사경산수와 일본화의 신감각주의가 대립하는 양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인물과 화조를 중심 모티프로 하는 색채화의 신감각주의 계열로 김은호, 정찬영, 최우석, 한유동 등이 있다. 당대에 가장 영향력있는 작가였던 김은호는 여러 방면의 소재에 뛰어난 기량을 가진 화가로 인물,화조,산수 등 폭넓은 영역을 다루었다.
인상주의의 도입은 고희동 이후 본격적인 서양화의 도입을 시작으로 일본의 인상주의와 밀접한 연관을 지니고 있다. 1900년대 이후 일본은 도쿄[東京] 미술학교를 중심으로 아카데미즘이 형성되었는데 주로 프랑스의 아카데미즘과 인상파적 요소가 혼합된 양식을 추구했다. 구로다 세이키[黑田淸輝], 후지시마 다케지[藤島武二] 등이 주축이 된 이들은 자파(紫派) 또는 회색파(灰色派)로 불리며 외광파적인 그림을 주로 그렸으나 회화의 주제와 내용이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이러한 일본 아카데미즘의 인상파적 요소는 도쿄 미술학교 출신의 고희동·김진호·김찬영·나혜석 등에 의해 한국에 도입된 이후 화단의 주류를 형성하기 시작했으며 조선미술전람회(선전)를 통해 회화의 한 양식으로 굳어졌다. 그러나 1930년대 서양화가 본격적으로 정착되면서 이러한 인상주의적인 요소가 뒤섞인 관학적인 화풍에서 좀더 본격적인 인상주의적 작품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인성은 〈초하의 빛〉(1933)·〈어느 가을날〉(1934) 등으로 독특한 화풍을 형성하면서 이후 선전의 주류를 이루었던 관학파적인 흐름에서 벗어난 인상주의적 양식을 구축했으며 오지호와 주경은 인상주의를 주체적으로 해석하는 작품을 보여주었다. 특히 오지호는 〈순수회화론〉에서 색채를 중심으로 한 회화론을 펼쳐 인상주의의 정착에 중요한 계기를 마련했고 〈사과나무〉(1937)·〈남향집〉(1939) 등에서처럼 본격적인 인상주의라 할 만한 작품을 제작했다. 그밖에 인상주의 화풍이 두드러지는 작가로는 서진달·김용조 등이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인상파가 본래의 의미에 충실한 회화 유파로서 본격적으로 형성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그 대부분은 재현적 회화를 표현하는 기법적 요소로 나타났던 하나의 경향을 일컫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 나라 또한 인상주의 시대에 다른 관점으로 예술을 이해하려던 움직임이 많은 작가들에의해 이미 역사적으로 증명되었다.
3] 가설- 인상주의는 원래 일본의’ 우키요에’ 에 영향을 받았다 ?
우키요에浮世繪는 '우키요憂世', '근심어린 세상'이라는 말에서 나왔다고 한다. 불교의 서방정토를 낙원으로 여기던 일본인들이 그곳에 비하면 "현세는 꺼리고 멀리해야 할근심스럽고 걱정스러운 세상"이라는 말을 자주했는데, 이렇게 말을 하다가 자연스럽게 "잠시동안만 머물 현세라면 조금 들뜬 기분으로 마음 편히 살자"는 뜬세상浮世 마인드를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가짐을 기본으로 "현재의 세태와 풍속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현재 양식 또는 당세풍當世風이라는 의미도 겸하게 되었다ㅡ." 뭐 잘한 건 아닌 듯하다.’라는뜻.
기본 태도가 그러하니 우키요에는 당대의 세상을 담는다. 즉 시사성과 폭넓은 주제를 특징으로 한다. 여기에는 "무색투명한 현재"만이 아니라 "향락주의적인 인생관을 배경으로 음란한 호색의 분위기가 농후하게 감도는 현실"까지도 포함된다. 그리고 뜬세상을 표현하는 그림답게 새로운 표현방법을 추구한다. 그런 까닭에 일반 대중의 미적 관심을 폭넓고 지속적으로 반영하게 되었다. 바로 현실 속에서 대중 -- 즉 "전통의 중압감에서 해방된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번창하게 되었음을 짐작하게한다.또한 대도시의 회화라는 것에 반필연적인 요인인 상업성이 어울어져 우키요에는 "대중적인 회화수요층을 전제로 한 회화였으며, 따라서 한 장의 원화에서 똑같은 복제화를 대량 생산하여 염가에 제공할 수 있는 목판화"가 중심이 되었다. 이 목판화들을 개인적으로는 마네가 수집했다는 사실이 알려져있다. Essay of Art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 사라짐의 미학 I 파리 근교 지베르니. 거기에 유명한 ‘모네의 정원’이 있다.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는 여기서 만년을 보냈다. 별장 안은 그가 수집한 일본 판화로 뒤덮여 이를 증명해 주기도한다. 상업적 요구가 앞서 있었다는 것은 이 그림들의 제작방식, 즉 대량복제를 낳아놓으며 규정한다.대량복제이기 때문에 이 그림들은 "화가의 의지가 관철되어 있는식사는 순수한 미술작품이 아니라 [서적 도매상의] 간섭을 받으며 조각사와 인쇄사의 기술에 크게 영향을 받았던 이른바 상품으로서의 판화 내지는 공예적 회화"였던 것이다.
일본에서 서구로 수출한 도자기를 쌌던 종이에 우키요에가 그려져 있었고, 그것에 반한 빈센트 반 고흐가 베껴 그리기까지 했다는 것으로도 유명한 우키요에의 예술성을 짐작해 보건데, 혹, 서양의 인상주의 가 바로 일본의 우키요에의 영향을 받은것이 아니냐는 설도 있지만, 어쨌든 시대적으로 인상주의와 일본의 유키요에 는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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